| 거문도이야기 32 --- 스물다섯 살의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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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e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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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9-05 11:2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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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다섯 살의 아버지]
두 해 전에 돌아가신 우리 고모님은 참 힘든 세월을 살다 가셨다.
일제강점기 때 고모님은 정신대에 잡혀 가지 않기 위해 일찍 시집을 가셨다.
동경유학을 했던 고모부는 교사로 재직하셨다. 두 분은 딸 하나를 낳고 행복하게 살았다.
그러다가 여순사건이 터지고 고모부는 붙잡혀 가서 돌아오지 않았다.
고모님의 시부모는 전쟁통에 흘러들어 온 북한출신의 나이 많은 남자에게 고모를 친정식구 몰래 시집 보냈다.
그런 뒤 고모가 낳은 내 사촌누님만을 데리고 서울로 이사를 갔다.
새고모부는 우체국 집배원으로 일하셨고 고모님은 새고모부와의 사이에서 많은 자식을 두었다.
그런데 북한에 사는 줄 알았던 고모부의 전처와 그 자식들이 월남해 백령도에 살고 있다는 연락이 왔다.
새고모부는 몇 푼 되지 않는 집배원의 월급 절반을 본처와 자식들에게 보냈다.
고모가 사는 동네는 면사무소 소재지라 어린 나도 자주 방문했다.
면사무소 소재지에서 마주친 고모는 항상 남루한 옷을 입고 머슴처럼 남의 집 허드렛일을 하고 계셨다.
그런 고모님의 모습은 어린 내가 보기에도 안쓰럽고 남부끄러웠다.
나는 고모를 외면하곤 했다.
나만 그러는 게 아니었다. 면소재지에 갔다가 고모의 모습을 보고 온 우리 아버지는 한숨만 쉬셨다.
그런데 정년퇴임을 한 새고모부는 퇴직금을 받아서 본처와 처자식에게 보내고 늙고 병든 몸을 고모에게 의지했다.
새월이 흘렸다. 고모와 새고모부는 딸들을 모두 시집 보내고, 서울에서 고등학교 교사를 하는 아들을 찾아 서울로 이사오셨다.
30년전에 새고모부가 돌아가시고, 두 해 전에 고모님이 돌아가셨다.
고모님은 돌아가실 때까지 꿈결같이 살다간 첫 남편을 못잊어하셨다.
고모는 어쩌면 평생 한 사람만 사랑한 건지도 모르겠다.
여순사건의 특별법이 통과됐다기에 오늘 첫고모부의 소생인 누님과 어렵게 통화를 했다.
두번째 고모부가 돌아가셨을 때와 고모님이 돌아가셨을 때 잠깐 뵈었던 누님이었다.
그분께 서먹함을 무릅쓰고 얼굴도 기억 못한다는 생부에 대해 물었다.
누님은 아버지의 호적상의 성함과 학교에서 교사들 사이에서 불려졌다는 이름, 그리고 붙잡혀 갈 때 고모부 나이가 25살이었다는 것까지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다.
나는 통화를 마치자마자 여순사건 피해자 보고서의 피해자 명단에서 고모부의 이름을 찾기 시작했다.
누님은 고모부가 대전형무소에서 처형된 것으로 알고 있었다.
누님이 말하는 고모부의 이름, 나이, 처형장소, 사건조사번호 등이 보고서에 나와있었다.
고모부는 대전형무소에 수용되지 않았고 여수로 압송돼 가자마자 즉결처형됐다고 기록돼 있었다. 나는 누님께 바로 잡을 사실을 전해주었다.
당시 진압군 지휘관으로 파견됐던 경북 경산출신에 일본군 헌병출신의 대위 김종원이란 놈이 끌려 온 수많은 청년들을 조사나 재판도 없이 자기 마음대로 일본칼로 목을 쳐 죽였다.
그 놈은 이 공으로 이승만의 호위무사가 됐다는 말도 전해 주었다.
누님은 울기 시작했다.
70대 할머니의 흐느낌을 따라 나도 울었다.
'스물다섯 살로 생을 마감한 아버지!'
그 동안 얼마나 사무치게 그리웠을까?
조부모의 품에 안겨 울면서 서울로 갔던 아기였던 내 누님.
얼마나 아버지가 그립고 보고 싶었으면,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을까?
아무도 모르게 70년을 간직해온 그 이름
'김일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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