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달콤한 마을 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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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e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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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1-08 21:0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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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아이들과 전철역으로 가는 마을 버스를 탔다. 경복궁 안에 있는 박물관에 가는 길이었다. 여름 방학 중, 매주 화요일마다 박물관 나들이를 하기로 미리 계획을 세웠었다. 처음에는 들뜬 만큼, 베낭에 담아가는 물건이 많더니 마지막 나들이인 오늘은 두 아이 모두 줄을 매어 목에 걸도록 되어있는 수첩 하나씩만을 챙겼다. 나도 짐을 최대한 줄여 목에 걸어도 될 만큼 가벼운 가방 하나로 마감을 했다.
우리 마을은 노인들이 유난히 많으시다. 그래서 새벽 산책길에 나서면 할아버지 할머니들과 자주 마주친다. 오르는데 약 20분쯤 소요되는 공원에는 커다란 정자가 있는데 어스름 새벽인데도 늘 열 분 가까이 되는 할머니들이 진을 치고 계신다. 체력단련하기에 알맞은 산책로에는 젊은이들 보다 지팡이를 짚으신 할아버지들이 눈에 많이 띈다.
평일 한낮에 운행하는 마을 버스 안도 마찬가지였다. 우리 빼고 운전 기사까지 합하여 여섯 분이 모두 노인이었다. 우리가 탄 다음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던 이도 할머니셨다. 이 분은 허리가 굽으시고 거동이 꽤 불편해 보였는데 짐이 많으셨다. 양손에 나누어 들은 검은 비닐 봉지는 족히 다섯 개가 넘어 보였다. 차가 천천히 멈추고, - 유난히 느리게 운행되는 이 차는 노인들의 속성과 많이 닮았다.- 할머니는 더 천천히 차에 오르셨다. 할머니가 무사히 빈자리에 앉으실 때까지 기사님은 줄곧 할머니께시선을 고정시킨 채 기다려 주셨다. 할머니는 운전석 바로 뒤에 앉으셨다. 그런데 그만 손에 들었던 비닐 봉지 간수하시는 일이 벅차셨나 보다. 발밑에 놓아둔 비닐 봉지 중 한 개의 입구가 열리는 듯 하더니 차가 덜컹하며 출발하자 둥글고 푸른 열매들이 와르르 쏟아졌다. 풋사과였다. 때마침 버스는 비탈길을 오르는 중이었다.
장난기 많은 개구쟁이 같은 이 사과들은 우리가 앉아 있는 뒷쪽을 향하여 마구 굴러왔다. 명랑해 뵈는 할아버지 한 분은 사과를 쫓던 눈길을 우리 아이들에게 맞추며 허허허 웃으셨다. 당황하신 할머니가 사과들을 담으려고 일어서자 이번엔 복숭아들이 굴러왔다. 붉은 볼을 한 아이들이 달리기 시합을 하는 듯 했다. 이쯤에선 버스 안에 있던 사람들이 다 웃었다. 비틀거리며 사과와 복숭아를 잡으려 애쓰시는 할머니가 안쓰러웠지만 웃지 않을 수가 없었다. 마침내 과일들은 우리 발 밑에 닿으며 멈추었다. 우리 작은 아이가 재빨리 그 중 한 개를 집어들었다. 풋사과치고는 크고 실했다.
" 할머니, 여기요."
" 오냐, 착하기도 하지!"
나는 얼른 앞자리로 뛰어가 텅빈 비닐봉지 두 개를 집어들고 왔다. 우리 큰 아이도 도왔다. 주워드리다 보니 과일들은 벌써 흠집이 많이 생겼다. 한 알도 빠트리지 않고 과일들을 봉지에 소중히 담으신 할머니는 ‘후유’ 하며 자리에 앉으셨다. 그리고는 열리지 않았던 다른 비닐 봉지에서 사탕 한 줌을 꺼내셨다.
“고마워서 내가 가만히 있을 수 없네!”
마침 큰길로 나가기 전의 긴 신호등 앞이어서 버스가 멈췄다. 이번에는 숨이 차신 할머니를 대신해 해맑으신 할아버지 한 분이 차안을 돌아다니시며 사탕을 나누어주셨다. 우리 아이들에겐 두 개씩 주셨다. 함께 박장대소한 덕분에 한 식구 같아진 노인들은 마을 버스가 전철역에 닿기까지 아무 말씀이 없으셨다. 아기들처럼 사탕 한 개씩을 입에 넣고 달콤해 하시느라고 말이다.
방금 잠자리에 들기 전, 아이들에게 오늘 어떤 일이 가장 기억에 남았느냐고 물었다. 둘 다 마을 버스에서 있었던 일이라고 대답했다. 그래, 맞다. 가끔씩 시시하고 하찮아 뵈기도 하는, 그저 살아가는 지금 우리의 생생한 모습이 어쩌면 박물관의 찬란한 유물들보다 더 소중하고 아름다운지도 모른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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