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 최초 삼도 기록
작성자 : e824 │ 2021-10-13 11:26:37  


연산군일기 28권, 연산 3년 11월 1일 무술 1번째기사 1497년 명 홍치(弘治) 10년승정원에서 생포한 왜적을 용서하지 말 것을 청하다국역원문.원본 보기
승정원이 아뢰기를,

"지금 이양(李良)이 생포(生捕)한 왜적 두 사람을 도로 포구로 내보내라 하셨는데, 신 등의 생각으로는 지난해에 삼포(三浦)의 왜인이 혹은 금하는 산의 소나무를 함부로 베어 가기도 하고 혹은 다투어 어량(魚梁)을 빼앗고 관차(官差)를 구타하여 상처를 입히니, 국가가 업신여김을 받음이 적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짐짓 너그럽게 대하여 방치하고 묻지 않았는데, 왜놈들이 우리 국가의 은혜를 망각하고서 녹도 만호(鹿島萬戶)를 죽이고 백성의 양곡을 겁탈하며, 또 바다로 수송하는 군량을 노략질하므로 조정에서 일부러 이계동(李季仝)을 보내어 수색하여 잡았으나 잡지 못하여 도주(島主)에게 글월을 보내서 타일렀던 것이옵니다.

그러나 그들은 조금도 두려워하거나 꺼리는 마음이 없어, 근자에는 배 한 척이 흥양(興陽) 삼도(三島)를 범하여 고기 낚고 나무하는 사람 4명을 죽이고 또 순천(順天) 금오도(金鰲島)를 범하므로 이양(李良)이 추격하여 배 한 척을 잡고 한 척은 도망갔는데, 쏘아 죽인 자가 8명이요, 생포된 자가 2명입니다. 그 두 사람의 공초에 이르기를 ‘저희들은 바로 제포(薺浦)에 거주하는 왜인이요, 도망간 배의 두 사람도 역시 추장 사두(沙豆)의 집 사람이다.’ 하니, 꾸짖고 벌주어 후일을 징계하도록 하시옵소서. 국가가 변장(邊將)으로 하여금 적을 잡게 하였다가, 잡아오면 문득 놓아 주는 것은 미편한 것 같습니다. 남방의 방어가 심히 허소하오니, 용서만 해 주어서 적으로 하여금 경홀히 여기고 업신여기는 마음을 더하게 해서는 아니 되겠은즉, 청컨대 여러 대신(大臣)에게 수의하옵소서."

하니, 명하여 증경 정승(曾經政丞) 및 의정부에 수의하게 하였다.

【태백산사고본】 8책 28권 18장 B면【국편영인본】 13 책 292 면
【분류】
외교-왜(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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