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려사절요 7 -- 나라 이름을 조선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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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e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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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1-11 20: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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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는 1392년 8월 7일, 이성계는 후처 강씨소생의 막내아들 이방석을 왕세자로 정했다. 또 강원도 원주로 귀양 간 공양왕을 공양군으로 봉하고 귀양지를 강원도 간성군으로 옮겼다.
뿐만 아니라 공민왕의 정비 안아무개 여인도 의화궁주로 봉해 대궐에서 쫓아냈다.
8월 29일, 이성계는 다시 전 밀직사 조임趙琳을 계품사計稟使사로 명나라에 보내고 자신의 왕위책봉을 청했다.
또 10월 12일, 이성계는 고려 충신들의 귀양을 풀고 우현보․ 이색․ 설장수 등 30여 명은 지방에서 살게 하고 30여 명은 편한대로 자유롭게 살게 했다.
또 10월 13일 고려의 종묘인 태묘太廟를 헐고 그 터에 왕으로 추존된 이성계 자신의 5대 조상을 모실 새 종묘를 짓게 했다.
10월 21일 이성계의 등극을 명나라에 알리려 갔던 밀직사 조반이 다음과 같은 글을 가지고 돌아왔다.
“나라가 흥하고 망하는 것이 어찌 우연이겠는가! 삼한에는 오래 전에 왕씨가 망하고 이씨가 들어서 온갖 형태의 계책을 써 오다가 이젠 내쫓아버렸다. 이는 지난날 삼한을 왕씨가 차지한 데 대한 황제의 보복이었다. 삼한의 신하와 백성들이 전쟁의 참화를 입지 않고 즐겁게 산다하니 이제부터는 영토를 잘 지키고 간사한 짓을 하지 않으면 복이 있을 것이다!”
명나라가 고려의 이성계의 등극을 인정한 것이다.
이어서 명나라 황제에게 이성계의 왕위책봉서를 주청하러 갔던 밀직사 조임이 고려에 돌아왔는데 왕위책봉문서는 보내지 않고 다음과 같은 글을 보냈다.
“임금의 성씨가 바뀌었으니 나라 이름을 무엇으로 정할지 빨리 와서 알리라!”
명나라 태조황제가 이성계의 등극을 인정한 것이다. 그런데 명나라 황제는 조임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일러 보냈다.
“너희 나라 이성계는 공민왕이 죽자, 아들이 있다며 임금에 세워달라고 청했다. 그러더니 뒤에 공민왕의 아들이 아니라고 했다. 또 왕요가 왕씨의 혈통이다며 임금에 세우겠다고 청하더니 이제 없애버렸다. 이성계가 왕요를 없애고 두세 번 사신을 보내왔는데 자기가 왕이 되겠다는 것이었다. 나는 따지지 않겠으니 이성계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할 것이며 백성들을 편안하게만 살게 한다면 서로 오가게 하겠다!”
명나라 황제도 자기 나라를 정벌하라는 명령을 받고 오히려 회군해 명령을 내린 고려임금을 죽이고 사직을 무너뜨린 이성계의 진실성을 의심하고 있는 것이다.
조반은 임금의 성씨가 바꾸었으니 나라이름을 지어 올리라는 황제의 글을 가지고 고려로 달려왔다.
이 때 이성계는 옛 비서에 이씨들의 서울터라는 속설이 전해져 온 새 서울터를 둘러보기 위해 계룡산에 가 있었다.
조임이 계룡산으로 달려가 나라 이름을 지어 올리라는 명나라 황제의 글을 전하자 이성계는 기뻐 어쩔 줄 몰라하며 서울 개성으로 돌아왔다.
서울 개성에 돌아온 이성계는 신하들을 불러 나라 이름을 무엇으로 정할지에 대해 논의를 시작했다. 이 논의에서 이성계는 화령和寧이란 이름을 꼽았고 신하들은 조선朝鮮이란 이름을 꼽았다.
이성계가 추천한 회령은 이성계의 고향 함흥의 옛 이름이었고, 신하들이 추천한 조선이란 이름은 단군조선 이래 면면히 이어온 옛 우리나라의 이름으로 단국조선이후 중국에서 이 땅의 모든 나라를 지칭할 때 부르는 이름이었다.
이성계는 이 두 이름을 써서 예문관 학사 한상질을 주청사로 임명해 명나라에 보냈다. 명나라는 화령과 조선 중에 조선으로 결정하고 다음과 같은 글과 함께 돌려보냈다.
“동이東夷 나라의 이름은 조선이란 이름이 아름답고 또 그 유래가 오래 되었으니 그 이름에 근본을 두어 나라 이름을 조선이라 하고 하늘의 뜻을 받들어 백성을 다스려 영구토록 자손을 번창케 하라!”
때는 1393년 2월, 마침내 주청사로 갔던 한상질이 돌아오자, 이성계는 나라 이름을 조선으로 고쳤다.
때는 1393년(태조2) 3월 15일이었다. 이성계는 거제도에 있던 왕실 종친들을 완산, 상주, 영해로 옮겨 살게 하라는 영을 내리고 왕실 종친인 왕강과 왕승보를 서울로 불러와 자유롭게 살게 하고 계룡산에 새 서울을 건설토록 명령을 내렸다. 그러나 계룡산의 새 서울건설은 강물이 가늘고 얕아 전국에서 들어온 조공을 실은 배가 들어오기 힘들다는 이유로 착공한 지 3개 월만에 무산됐다.
한편 이 때 명나라는 이성계가 요동지방에 국경의 정세를 정탐하는 간첩을 보냈다며 생트집을 잡고 국교를 단절한 채 쳐들어 오겠다며 협박해왔다. 그리고 질 좋은 말 1만 필을 빼앗아 갔다.
명나라는 이성계의 등극을 인정해 주고 경제적인 착취를 계속했다.
명나라는 다시 공양왕을 죽였다며 생트집을 잡고 이성계가 명나라에 올리는 글에 조선국왕이라는 이름을 쓰지 않고 권지국사라는 이름을 썼다며 또다시 국교를 단절한 채 쳐들어 오겠다 협박하면서 좋은 말 1만 필을 요구했다.
그런 가운데 나라 안에서는 사건이 터졌다.
때는 1394년(태조3) 1월 16일.
이 날 문하찬성사 박위가 왕씨 종친과 짜고 고려 왕씨를 복위시키기 위해 점친 사건이 드러났다. 이 박위는 목은 이색의 사위였는데 이성계가 위하도에서 회군할 때 우군 이성계의 부하장군으로 이성계를 따라 회군했던 충직한 이성계의 부하였다. 그는 이성계가 고려를 무너뜨리고 왕이 되려하자 이성계에게 반기를 들고 여러 차례에 귀양을 갔었다.
사건의 진상은 다음과 같다.
지난 1292년 9월, 그러니까 이성계가 공양왕을 내쫓고 고려를 빼앗은 지 2개월 뒤였다.
문하찬성사 박위가 동래현감 김가행과 염장관 박중질을 경상도 밀양의 유명한 봉사 점쟁이 이흥무에게 보내 폐위된 공양왕과 세자가 임금에 오를 운이 있는지를 물었다.
이흥무가 점을 치니 공양왕과 세자의 점괘가 좋오지 않게 나왔다. 박위는 이흥무를 경상도 의창으로 보내 이 곳에서 귀양을 살다가 거제도로 끌려가는 남평군 왕화王和을 맞나게 했다. 그리고 이흥무에게 다시 남평군 왕화와 다른 고려왕실 종친들의 점을 치게 하고 누가 왕위에 오를 운이 있는지를 물었다.
그러나 남평군 왕화와 다른 종친 등도 임금이 되는 운은 없었다.
박위는 이흥무에게 사람을 보내고 다시 공양왕 부자의 점을 치게 하고 공양왕의 세자 왕석을 임금에 앉히기로 했었다.
이 사건이 발각돼 보고되자, 이성계의 부하들은 박위와 공양왕 3부자 그리고 왕씨들을 모두 죽일 것을 청했다.
상소가 계속 올라오자 이성계는 공양왕 3부자와 거제도와 강화도의 모든 왕씨를 죽이라고 명령을 내렸다.
때는 1394년(태조3) 4월이었다. 대중추원 부사 정남진과 형조 의랑 함부림이 공양왕 3부자를 죽이기 위해 삼척으로 떠났고, 형조전서 윤방경과 대장군 오몽을이 왕실 종친들을 죽이기 위해 강화도로 떠나고, 형조전서 손흥종과 첨절제사 심효생이 왕씨들을 죽이기 위해 거제도에 떠났다.
1394년(태조3) 4월 17일, 삼척에 도착한 정남진은 공양왕과 그 두 아들을 꿇어 앉히고 이성계가 내린 교지를 읽었다.
동래현감 김가행 등이 반역을 도모하고 봉사 이흥무에게 찾아가 그대와 그대의 친척들의 점을 쳤다. 그대는 알지 못한 일이겠지만 이 일로 인해 대간에서 12차례 상소를 올려 죽이기를 청하므로 할 수 없이 허락하노니 그리 알라!
마침내 정남진은 공양왕 3부자를 목 베어 죽였다.
공양왕의 이 때 나이 50세, 폐위 된 지 1년 9개 월만에 피살된 것이다.
공양왕 3부자가 죽던 이 날 고려의 마른하늘에는 우박이 쏟아졌다고 역사 조선왕조실록 태조편은 기록하고 있다.
이 날로부터 22년 뒤인 1416년(태종16) 태종 이방원은 나라 안에 가뭄이 계속되자, 공양군을 공양왕으로 복작시키고 영혼을 위로했다.
한편 왕씨들을 죽이기 위해 거제도와 강화도에 도착한 윤방경․ 손흥종 등은 다시 왕씨들을 이주시킨다는 거짓말로 왕씨들을 묶여 배에 싣고 바다로 떠나갔다.
여기서 이정형李庭馨의 ‘동각잡기東閣雜記’라는 책은 왕씨들의 죽음과 관련,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왕씨가 망할 때 모의해서 여러 왕씨들을 죽였다. 왕씨들을 죽일 명분이 없자, 배가 바다로 나가면 헤엄 잘 치는 뱃사공이 배의 밑바닥에 구멍을 뚫게 해 배를 바닥 속에 가라앉혔다.
배 속에서 새 세상을 꿈꾸던 왕씨들은 모두 배와 함께 바닷속에 가라앉았다.
왕씨들의 함성은 섬마을을 메아리쳤다.
‘동각잡기’는 계속해서 적고 있다.
“이 때 섬 언덕을 지나던 한 스님이 바닷 속에 가라앉는 배 위에서 절규하며 죽어가는 한 왕씨을 불렀다. 그러자 배에 타고 있던 한 왕씨가 시를 지어 대답했다.
노하나 젓는소리 창파 밖인데(一聲柔櫓蒼波外).
산승은 있지만은 넌들 어쩌리(縱有山僧奈爾何)
그러자 스님은 할 말을 잃고 통곡하면서 돌아갔다.”
이 왕씨들의 죽음과 관련, 조선왕조실록 태조편은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1394년(태조3) 4월 15일, 윤방경 등이 강화도에 있던 왕씨들을 강화나루에 던져 죽였다.”
“1394년(태조3) 4월 20일, 손흥종 등이 거제도에 있던 왕씨들을 거제도 바다에 던져 죽였다.”
거제도와 강화도에 있던 왕씨들을 모두 죽인 이성계는 전국에 명령을 내렸다.
“도망가서 숨어 사는 왕씨들을 모두 잡아 죽이라!”
왕씨의 색출 작업이 전국에서 벌어졌고 붙잡힌 왕씨들은 어린아이까지 모두 죽임을 당했다.
이렇게 해서 고려 5백년 동안 번성했던 왕건의 후손들은 죽임을 당했다.
이 땅의 역사 이래 어느 왕조에서도 없었던 가장 처참한 사건이었다.
운 좋게 도망간 왕씨들은 성을 전全씨, 전田씨, 옥玉씨 등으로 바꾼 뒤 천민으로 살았다.
이들은 이런 박해 속에서도 자신들의 핏속에 자랑스런 왕건의 피가 흐르고 있다는 자부심만은 버리지 못했다. 그래서 이들은 한자 변수가 임금왕王자인 성을 썼지만 성을 바꾸고 살아가는 왕씨들의 색출과 고발은 1313년(태종13)때까지 계속됐다.
지금의 경기도 개풍군 광덕면의 광덕산 서쪽에 배록동俳祿洞 또는 배록골이란 골짜기가 있었다.
배록이란 나라의 벼슬을 등지고 숨었다는 뜻이다.
이성계가 고려를 무너뜨리고 임금이 되자, 절개와 충성을 지키기 위해 두 임금을 섬길 수 없다며 적당한 은둔처를 찾던 사람들은 땅이름이 안고 있는 뜻을 좇아 이 곳에 들어와 집을 짓고 살기 시작했다.
이 곳에 모여 사는 사람들은 예문관 대제학 김진문金振門, 조의생曺義生, 맹호성孟好誠, 신규申珪, 신우申瑀, 신순申咰, 신흔, 고천상高天祥, 서중보徐仲輔, 이경李瓊, 이탕휴李湯休, 이명성李明誠, 전귀생田貴生, 성사제成思齊, 전 전리판서 심원부沈元符(심덕부의 동생) 등 모두 72명이었다.
이들은 모두 당시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는 쟁쟁한 충신과 학사들이었다.
이 중에는 그 이름이 널리 알려진 사람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바로 조의신曺義臣이란 학생도 있었다.
조의신은 고려가 망하자, 다니던 성균관 태학을 자퇴하고 선배들을 따라 이 배록골에 들어 왔다.
이들은 이 곳에 들어오면서 나라가 망했는데 책을 보아서 무엇 하느냐며 책을 모두 불태웠다.
또 벼슬아치가 조정에서 입던 모자와 옷이 어디에 필요하냐며 관모와 관복을 벗어 이 입구에 서 있는 나무에 걸어두고 골짜기로 들어가 초가집을 짓고 살면서 마을 입구에 두문동杜門洞이란 푯말을 써붙였다.
두문이란 주역에서 따온 말로 8개 방향 문門의 하나로 흉凶한 방향의 문을 가리키며 9궁九宮의 본자리를 이르는 말이었다.
이들은 낮에는 밭에 나가 일을 하고 저녁이면 고려 왕씨 임금을 그리워하며 살았다.
마침내 이들 이 이야기는 이성계 일당의 귀에까지 들어갔다.
이 두문동의 고려충신들은 이성계가 높은 벼슬을 주겠다는 말이 전해오면 더러운 소리를 들었다며 냇가로 달려가 귀를 씻었다.
옛날 중국의 요임금은 왕도를 실현할 만한 자신의 왕자들과 어진신하들이 많았지만 세상에서 가장 어진 사람을 골라 황제의 자리를 전해주고 싶었다.
허유許由라는 사람이 세상에서 가장 어질다는 것을 알게 된 요임금은 허유를 찾아가 천하를 양도하려 했다. 허유는 거절하며 기산箕山이라는 깊은 산에 숨어버렸다. 간신히 허유를 찾은 요임금은 제후자리를 맡아달라며 부탁했다. 그러자 허유는 더러운 소리를 들었다며 영수강潁水江이라는 강물로 달려가 귀를 씻었다. 이 때 이 강물을 소에게 먹이러 오던 허유의 친구 소부巢父는 허유가 귀를 씻는 것을 보고 이유를 물었다. 허유의 이야기를 전해들은 소부는 더러운 소리를 듣고 더러워진 귀를 씻은 더러운 물을 소에게 먹일 수 없다면 돌아갔다.
야사는 이성계의 일당들이 군사로 두문동을 포위하고 집에 불을 질렀으며, 72명의 충신과 그를 따라온 가족들은 방문을 꼭 걸어 잠근 채 어린아이, 어른 할 것 없이 꼭꼭 끌어안고 타 죽었다고기록하고 있다.
대동씨족고에서 다음과 같은 말들이 전하다.
이탕휴는 한림학사를 지냈다. 포은 정몽주의 스승이었으며 고려가 끝났을 때 두문동에 들어갔으나 돌아오지 않았다. 그러자 한림의 벼슬을 하던 그 아들 이분李芬은 아버지의 수절을 교훈으로 삼아 종신토록 벼슬에 나아가지 않고 가야금을 타며 노래했다.
“하늘도 침묵침묵하고 땅도 침묵침묵하며 나또한 침묵침묵하니 침묵하던 노인이 불러 말하네!”
중국 춘추시대에 개자추란 사람이 살았다.
개자추는 진나라 문공이 망했을 때 19년 동안 문공을 모셨다.
마침내 문공이 귀국한 뒤 임금자리에 올랐으나 개자추의 은혜를 잊고 벼슬을 주지 않았다.
문공이 벼슬을 주지 않자, 개자추는 부끄럽게 생각, 늙은 어머니를 모시고 면산이라는 산에 숨어 살았다. 뒤늦게 지신의 잘못을 뉘우친 문공이 개자추에게 높은 벼슬을 주기 위해 찾았으나 그는 숲이 우거진 면산에 숨어 나오지 않았다. 문공은 개자추가 나오게 하기 위해 산 속에 불을 지를 것을 명령했지만 개자추는 끝내 산 속에서 나오지 않고 늙은 어머니를 꼭꼭 끌어안고 불에 타죽고 말았다.
후세사람들은 이들을 개자추에 비유해 이 날 불에 타 죽은 72명을 72현이라 불렀다.
이로부터 4백년이 흐른 뒤 이성계의 후손 정조는 이들을 고려에 절개를 지키다 죽은 신하라 말하고 이들이 불에 타죽은 두문동에 표절사表節祠란 사당을 짓고 충신들의 거룩한 절개와 영혼을 위로했다.
그리고 1809년(순조9), 72현의 한 사람인 성사제成思齊의 후손이 성사제의 글을 모아 두문동실기杜門洞實記라는 책을 펴냈다.
때는 1392년(태조1) 12월 23일.
명나라 하절사로 다녀오던 예의판서 농암 김주金澍는 압록강 용만龍灣에 도착해 고려가 이성계에게 망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김주는 슬퍼하며 울다가 아내에게 편지를 썼다.
“충신은 두 임금을 섬길 수 없소. 부인이 죽거든 이 옷으로 합장을 하고 내가 중국으로 돌아간 날을 제삿날로 하시오!”
김주는 그 편지와 옷을 벗어 동료 사신을 통해 집으로 보냈다. 그는 명나라로 다시 들어가 명나라 황제를 만나 울면서 말했다.
“황제의 군사를 내어 이성계를 평정해 주소서!”
그러나 명나라 태조는 거절하며 말했다.
“임금이 되는 것은 사람의 힘으로 되는 것만이 아니라 천명이 있어야 한다!”
김주는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김주를 불쌍히 여긴 명나라 황제는 김주에게 판서의 벼슬을 내렸다.
김주는 명나라의 호북성과 호남성에 해당하는 형초荊楚라는 지방에 묻혀 살면서 아내를 맞아 딸 3명을 낳고 망국의 한을 달랬다.
김주는 본은 선산김씨이며, 고향은 구미 선산 신곡 농암籠岩이다. 사람들은 그를 농암선생이라고 했다. 김주의 아들과 손자는 모두 벼슬에 나아갔다. 특히 증손자 지경之慶은 감사를 지냈으며 지경의 아들 응기應箕는 정승에까지 올랐다. 1597년 일본 국왕의 책봉을 위해 명나라에서 일본으로 가는 사절단이 있었다. 이 속에 자신이 김주가 낳은 딸의 후예라고 밝힌 허추성이란 사람이 있었다.
고려충신, 원천석
나라를 세웠음에도 자신을 따를 신하가 없어 부끄러워 하던 이성계는 마침내 운곡 원천석元天錫을 생각했다.
원천석의 본은 원주 원씨이며 자는 자정, 호는 운곡, 올해 나이 60세였다.
그는 진사에 오른 뒤 벼슬에 나아가지 않았는데 충성과 절개를 지키는 선비였다.
그는 고려의 기둥은 최영이라 하면서 모든 백성은 최영을 의지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다 최영이 이성계에게 죽임을 당하자, 그는 최영의 무덤을 찾아가 통곡하며 시를 썼었다.
거울이 빛을 묻고 기둥돌이 무너지니
사방의 백성들 뉘 아니 슬퍼하리
혁혁했던 빛나는 공이 마침내 허물어져도
확고한 충성은 죽어도 썩지 않으리
청사에 기록된 행적은 질질이 가득한데
가엾도다 벌써 훍이되었네
생각건대 아득한 저 황천아래
동문을 바라봐도 분한 마음은 아니 풀리네
원천석은 이성계보다 3살 위였고 이방원의 스승이기도 했다. 마침내 이성계는 이방원을 보내 그를 불렀다. 원천석은 찾아간 이방원에게 말했다.
“고려의 종묘사직은 5백년 동안 흘러왔다. 권세 있는 자가 각자 임금의 자리를 탐했었다면 어찌 5백년 동안 이어졌으리.”
원천석은 이어서 말했다.
“작은 도둑을 잡는다면서 나라를 빼앗은 너희들이 어찌 큰 도둑이 아니겠느냐? 그런 너희들도 충절이란 말을 쓸 수 있겠느냐? 만약 누가 그런 너희를 밀어내고 또 다시 나라를 세운다면 감히 그들을 역적이라고 부를 수 있겠느냐? 나는 너희가 세운 나라는 나라가 아님을 글로써 적어 남길 것이니라. 내 글이 사람들에게 읽힌다면 사람들은 고려가 잠시 중단되었을 뿐 너희가 세운 나라는 나라가 아님을 알게 될 것이니라!”
방원은 돌아왔고 원천석은 개성을 떠나 강원도 원주 치악산으로 가면서 시 한 수를 남겼다.
흥망이 유수하니 만월대도 추초로다
5백년 왕업이 목적牧笛에 붙였으니
석양에 지나는 객 눈물겨워 하노라
마침내 태조 이성계와 정종이 물러가고 원천석의 제자 이방원이 조선 제3대 임금에 올랐다.
태종 이방원은 원천석을 모셔오기 위해 원주로 향했다.
그러나 제자 이방원이 임금이 되어 자신을 만나러 온다는 얘기를 전해들은 원천석은 치악산으로 들어가 깊은 숲 속에 숨어버렸다.
태종 이방원은 원천석을 찾아 석계石溪에 있는 원천석의 암자에 올라 원천석을 찾지 못할 것을 안고 스승이 숨어 있는 산을 향해 절을 한 뒤 산을 내려왔다. 그리고 원천석의 아들 원형元泂에게 현감벼슬을 내렸다.
지금도 강원도 원주 치악산에는 이 전설이 전해온다. 태종이 잘못든 길을 따라 산에 올랐다가 스승 원천석을 찾으며 쉬었던 자리를 주필대駐㻫臺라 하고, 석계에 원천석의 암자에서 쉬었던 자리를 태종대太宗臺라 한다. 또 태종이 원천석을 찾지 못하고 돌아오면서 원천석이 숨어 있는 산을 향해 절을 했던 산을 배향산拜向山이라 한다.
원천석은 고려의 패망과 조선왕조의 건국과정에서 일어났던 모든 사건을 6권의 책으로 엮어 돌로 된 함에 넣고 자손들에게 말했다.
“어진 후손이 나오기 전에는 열어 보지 말라(非賢者勿妄開).”
원천석이 죽자, 자손들은 그 속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궁금했다.
증손자 때 집안 사람들이 모두 모여 의논을 하고 함을 열었다.
자손들은 놀라고 말았다.
고려의 패망과 조선 개국과정에 있었던 모든 사실들이 6권의 책 속에 기록돼 있었다.
자손들은 이 사실이 세상에 알려질 것이 두려워 이 책을 불에 태워 없앴다.
왕이 된 이성계는 야은冶隱 길재吉再(1353∼1419)를 불렀다.
길재는 고려 우왕 때 과거에 급제해 벼슬을 시작, 창왕 때 정7품 문하주서라는 벼슬에 올랐다.
이성계가 우왕을 폐위하자, 슬퍼하며 우왕의 아들 창왕을 모셨다.
그런데 이성계가 창왕을 신돈의 손자라해 다시 폐위하고 공양왕을 임금자리에 올리자, 그는 어머니를 모신다는 핑계로 벼슬을 버리고 개성을 떠났다.
그는 스승 이색이 경기 장단 고향에서 귀양을 산다는 말을 듣고 내려 오는 길에 스승을 찾았다. 이색은 길재를 아끼며 사랑했다.
스승 이색은 자기를 찾아왔다 떠나는 제자 길재에게 시 한 수를 내렸다.
구름같은 벼슬따윈 급급할 게 아니라서
기러기 아득아득 공중으로 날아가네
軒冕儻來非急急 飛鴻一箇在冥冥
길재는 한양 관악산 아래로 들어가 우왕의 3년 상을 치르면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마침내 왕위에 오른 이성계가 사람을 보내 만나기를 청했다.
“새 왕이 뵙기를 청합니다!”
길재는 말했다.
“그런 사람만나 볼 필요도 없네!”
길재는 끝내 나아가지 않았다.
때는 1400년이었다. 조선이 건국된 지 9년이 되는 해였다.
태조 이성계가 상왕으로 물러가고 그의 둘째아들 이방과가 정종에 오르고 다섯째아들 이방원이 세제 즉 왕의 동생자격으로 세자에 올랐다.
길재와 이방원은 이색이 성균관 교수로 있을 때 그 문하에서 함께 글을 배운 늦깎이 친구였다.
이 때 길재는 관악산 아래서 서당을 열고 학생들을 가르치다가 고려가 망하자 고향 구미 선산(善州)으로 돌아가 노모를 봉양하며 후배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었다.
세제인 세자 이방원은 길재를 불러오라는 명령을 내렸다.
오늘날 국군본부격인 삼군부 군사가 경상도 구미 선산 금오산 아래에 있던 길재의 집에 도착해 영을 전했다. 이 때 한양으로 갔던 서울이 다시 개성으로 옮겨갔었다. 길재는 뿌리치지 못하고 삼군부의 역마를 타고 개성으로 올라왔다.
길재가 불려오자, 세제 이방원은 정종에게 정7품 성균관 교수직인 봉상박사奉常博士를 내렸다.
그러나 길재는 임명장인 교지에 절도 하지 않고 말했다.
“제가 옛날에 저하(태종 이방원)와 더불어 성균관 태학(泮宮)에서 시경을 읽었는데 이제 신을 부른 것이 그 정을 잊지 않았음이라 여겨집니다. 제가 신辛씨(우왕)조정의 과거에 합격해 벼슬하다가 왕王씨(공양왕)가 복위하자, 곧 고향으로 돌아가 생을 마감하려 했습니다. 지금의 부르심은 서울에 올라온 것으로 답하옵고 벼슬에 종사하는 것은 길재의 뜻이 결코 아니옵니다!”
세제인 세자 이방원이 길재의 말을 듣고 기분 나빠하며 말했다.
“나랏일에 힘이 되지 못한 학문이 무슨 학문이며, 초야에 묻힌 학문이 무슨 학문이오!”
그때 옆에 있던 하윤이 말했다.
“길재가 신씨의 벼슬을 한 탓에 왕씨 때는 벼슬을 버린 사람입니다. 하물며 이제 와서 다른 성을 섬기겠습니까? 기왕에 뜻이 알려진 바 길재가 옛 임금을 위해 절개를 지켜 공명도 버렸노라고 한다면 조선의 선비들에게 큰 거울이 될 것입니다. 조선의 선비정신을 기르는데 본보기로 삼으소서!”
이방원이 길재에게 말했다.
“그대가 하는 말은 임금(綱常)을 바꾸지 못하겠다는 도리를 말하는 것이니 뜻을 돌리기는 어렵겠소. 그러나 부른 자는 나지만 벼슬을 내린 자는 전하이니 말씀을 고한 것이 좋겠소.”
길재는 정종에게 글을 올렸다.
“여자는 두 남편을 섬기지 못함과 같이 저는 두 임금을 섬길 수 없습니다. 저는 초래草萊의 태생으로 고려의 문하주서(정7품)라는 벼슬까지 받은 몸입니다. 이 몸을 이끌고 또 다시 거룩한 이씨 조정에 나와서 누를 끼칠 수는 없습니다. 바라옵건대 이 몸을 시골(田里)로 놓아 보냄으로써 두 성씨의 임금을 받들지 않는다(不事二姓)는 뜻을 지키게 하시고 늙은 어머님을 효로써 받들게 하며 남은 여생을 마치도록 해주소서!”
이 상소가 올라오자, 정종은 길재를 죽이려 하며 말했다.
“예전에도 이런 사람이 있었던가? 주는 벼슬을 마다하니 불충이 아닌가?”
한 신하가 말했다.
“길재는 마땅한 작록을 내려 써야 할 사람이나 선비의 뜻이 그렇다면 그 뜻을 따라 줌이 옳을 듯 합니다!”
정종은 길재의 충절과 절개를 아름답게 여겨 선물을 내려 그를 돌려보내고 그의 집에 부역을 면제해 주고 충신 정려문을 세웠다.
정종의 이 배려는 길재의 충절을 정치적으로 이용, 조선 선비들의 거울과 징표로 삼으려한 데 있었다.
길재는 개성을 떠나 돌아오면서 시한수를 지었다.
뒷날 왕위에 오른 태종이 이방원이 그 아들에게 현감벼슬을 내리자 아들은 거부했다. 길재는 아들에게 말했다.
“나는 내 임금을 섬기느라 이렇게 살았다, 너는 나아가 너의 임금을 섬겨라!”
마침내 길재 아들은 벼슬에 나아갔다.
오백년 도읍지를 필마로 돌아드니
산천은 의구한데 인걸은 간데 없네
어즈버 태평연월이 꿈이런가 하노라
길재는 고향에 돌아가 늙은 어머니를 모시면서 후배들을 가르치다 66세를 일기로 세상을 떴다. 그의 학문은 김숙자 김종직 이굉필 조광조 이황으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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