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꺼운 하얀 장지에 잘 써내려간 승지, 직제학 예조참판 벼슬을 지낸 명성황후 외척
閔丙承 님이 戊子년인 1888년(고종 25년)에 쓴 편지입니다.
이름만 얼른 보아도 이 분이 명성황후집안의 사람으로 민씨 집안의 대표였던 閔丙奭 선생
과 같은 학렬을 쓴다는 것을 알 것 같고 민병석 님과 형제관계에 있는 분이다는 것을 알 것
같습니다.
민씨집안에 민병석 님과 함께 문장으로 널리 알려진 분이 바로 이 분입니다.
이 분은 이조참판이 마지막 벼슬이었는데 나라가 망해 더 이상 벼슬을 하지 못했습니다.
조선말 각종 유명인사들의 시문집에 보면 이 분에게 쓴 편지가 많이 보이고 조선말에서 일
본제국주의 강제 점점기 때 발행된 전국 각 지방유림들의 시문집에 보면 이 분이 쓴 서문이
많이 싣려 있습니다.
우리 인터넷규장각 사이트에 현재 올라 있는 修堂遺稿, 孔漁村奉讚詩稿 등의 문집에서도
선생이 쓴 글이 실려 있습니다.
조선말엽에 많은 유림들의 대표격으로 유림인사들과 많은 친분이 있었으며
문필가로 당대를 풍미했던 분입니다.
찬란한 영화와 권세를 누렸던 민씨집안의 유물을 모아 엮은 민씨유물도록에도 민영환 선
생 글과 함께 이 분의 편지가 나옵니다.
이 분에 대해 더 자세한 설명이 필요하다면 말하겠습니다.
이 분의 호는 丹雲(붉은구름), 품계는 가의대부 마지막 벼슬은 이조참판 겸 규장각 직제학,
세자시강원 검교보덕 입니다.
세자시강원은 세자에게 공부를 가르치는 세자교육기관입니다. 검교보덕이라 했는데 검교
란 명예직이라는 뜻이며 보덕이 세자사부입니다.
그러므로 명예세자사부를 지냈던 분입니다.
이 분이 묘지명을 썼다는 수당유고는 우리 사이트에 올려져 있으며
경매번호는 12441번입니다.
수당 선생이란 분이 이 분의 묘지명을 썼는데 아래 참고사진에 올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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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분은 아직 찾지 못했는 인터넷에 다음과 같이 검색됩니다. 조선 초기 문신 한권(韓卷)의 시문집. 후손 동철(東喆)이 편집, 간행하였다. 책머리에 민병승(閔丙承)의 서문이 있고, 책끝에 손묵영(孫默永)의 발문이 있다. 상권에는 저자의 연보·시·소·계 등과 국조실록에 실린 저자와의 관련기록을 수록하였고, 《국조방목》 《국조인물지》 《동국여지승람》 등에서 저자를 소개한 부분을 <습유(拾遺)>라 하여 모아 놓았다.